ZOE 시승을 통해 생각해 보는
미래 컴팩트 전기차의 포지션
수십년만의 폭설과 혹한이 전국을 휩쓰는 이번 주말, 작년부터 계획하였던 르노의컴팩트 전기차 ZOE(조에)를 시승하였다. 작년 여름, 오랬동안 판매되돈 SM3ZE를 대체하기 위한 모델로 국내에 출시가 되어, 비교적 생소한 차량이지만, 유럽에서는 1세대 (페이스리프트 이전 모델) 조에는 2015년과 2016년 전기차로서는 베스트셀링 모델이었던 바 있다.
1세대 조에는 2012년 첫 인도가 시작되었는데, 배터리 용량을 높이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웠던 과거에 착안된 컨셉으로, 작은 배터리와 모터로도 일상에서 쓸 만한 거리를 주행하기 위한 절충이 차량 크기의 제한으로 이루어진 컴플라이언스 카 시절의 차량 크기 선택 전략을 따르는 것이다. 당시에는 이와 같은 한계로 현대 블루온, 기아 레이 EV, 피아트 500e, 스파크 EV 등 A 세그먼트의 전기차들이 주류를 이뤘다. 길이 4.08 미터, 폭 1.73 미터, 높이 1.56 미터, 휠베이스 2.60미터로 기아 쏘울 (길이 4.20 미터, 폭 1.80 미터, 높이 1.62미터, 휠베이스 2.60미터) 보다 아주 약간 작은 정도이다. 그렇지만 동글동글한 모양 탓에 밖에서 보면 경차 처럼 보인다.
저녁시간에 차를 받아, 파워큐브로 충전을 하고 추운 주말 아침에 차를 타고 나선다. 노면 상태가 좋지 않으므로 차량의 퍼포먼스를 탐색하기는 어려운 환경이다. 가장 흡족한 부분은 상당히 성능이 좋은 히트펌프인데, 수 년 전 눈이 오는 상황에서 SM3ZE 를 시승할 때 느꼈던 여유있는 성능의 히트펌프와 비슷한 느낌이다. 과거의 SM3ZE 는 7핀/AC3상 규격을 사용하여, 완속이나 급속 충전에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지만, 국내에 발매된 조에는 5핀+DC콤보를 지원하므로, 현재 존재하는 기존 충전 인프라를 사용하는데 어려움이 별로 없다.
국내 기준 저온 주행가능거리는 236km, 상온은 309km 로 인증을 받았는데,외기 온도가 -6’c 인 상황에서 5km/kWh 정도의 전비를 보여준다. 23.5’C, 오토로 공조를 설정하고 주행하는데, 배터리 용량이 충분해서 (54.5kWh) 구형 아이오닉을 탈 때 느끼게 되는 히터 사용에 대한 부담감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시승 차량은 열선 시트와 열선 스티어링 휠이 모두 탑재되어 있어서, 여유있는 배터리가 뒷받침하는 히터와 함께 사용하면 춥고 힘들게 운행을 하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조에는 파생 모델이 아닌 관계로 바닥배치 배터리 등 전용 설계의 장점을 보유하고 있고, 이로 인해 거동의 특성은 전기차에서 기대하는 통상적인 장점을 어느정도 잘 보여준다. 휠베이스가 짧고 무게중심이 높아 뒤뚱거리는 쏘울 부스터 전기차에 비해서는 보다 절제된 거동을 보여준다. 이러한 장점 덕에 요철이나 도로의 보수 부위 등을 통과할 때 그리 유쾌하지 않은 통상적인 동급 B 세그먼트 내연기관 해치백 차량들에 비해서는 보다 쾌적함을 느낄 수 있다. 남산을 중심으로 도심을 오전동안 주행하였을 때, 차량의 컴팩트한 크기와 넉넉한 토크 덕에 1인 가족으로 시내 주행이 많은 출퇴근 용으로 사용한다면 아주 만족도가 높을 것 같았다. 편의성을 돕는 오토홀드가 장비되어 있고, B 모드를 이용하면 원 페달 드라이빙도 가능하다.
해치백이라는 폼 팩터의 한계
실내 공간은 차급을 감안하면 그리 좁지는 않게 느껴진다. 그래도 좁은 것은 사실이다. 차에 타고 A에서 B로 이동하는 데에는 불편함이 없다는 것이지만, 실내에서 거주를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또한, 전용 모델임에도 불구하고 프렁크(frunk)가 없고 해치백 형상으로 트렁크(trunk) 공간에도 한계가 느껴진다.
또 아쉬운 점은, 요즈음의 전기차에 필수 요소처럼 간주되는 종방향 레이더 크루즈 컨트롤과 횡방향 차선 유지 보조장치 등 소위 반자율 주행 보조장치가 탑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편의 장비에는 다소 인색하여 의자를 수동으로 조절해야 하는 등 여러가지로 스파르탄 한 셋팅이다. 무엇보다 소형 해치백을 선호하는 유럽 시장에 특화된 차량이라는 생각이 들고, 작은 차를 좋아하여 스파크와 모닝을 모두 보유했던 필자에게도 (출퇴근 차량으로 구입한다면) 상당히 구미가 당기는 여러가지 요소를 갖추고 있다. 3-4년 전이라면 필자는 조에를 정말 갖고싶은 차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파워트레인과 배터리 때문에 기본 가격이 어느정도 비쌀 수 밖에 없는 전기차의 특성상, 60kWh 에 가까운 배터리를 장비하고 가격은 4천만원이 넘지만 (실 구매 가격은 2021년에는 3천만원이 넘어간다) 실내 공간이 좁아 차박도 어렵고, 휴게 공간으로 활용하기도 어렵고, 짐을 많이 싣기도 어렵고 , 주행 보조 장비도 부족하다는 단점은 상당히 유의미하게 부각된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해서 차량의 거주 공간적 특성이 중요하게 부각되며 나들이를 가서도 차 안에서 식사를 하거나 엔터테인먼트를 즐길 수 밖에 없는 환경이 펼쳐지고 있는데, 이러한 시대적 요구 속에서는 본 차량의 B 세그먼트 해치백이라는 폼 팩터의 한계가 두드러지게 된다.
그렇다면 컴팩트 전기차는
어떻게 발전해야 할까?
차량에 요구되는 공간으로서의 기능이 점차 다양해지는 시대 환경에서 컴팩트 전기차는 어떻게 발전해야 할까? 사실, 컴팩트임에도 불구하고 활용도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을 레이 전기차가 이미 잘 보여준 바 있었다. 주행 가능거리가 극단적으로 짧아지게 되면 상품성이 낮아지기에 전기차는 결국 최소한 투입될 수 밖에 없는 모터와 배터리의 문턱이 존재하게 마련이다. 따라서 중량에 기여하는 부분이 많지 않은 바디 형상을 최대한 컨테이너 박스에 가깝게 앞, 뒤, 위로 늘여서 실내 공간을 최대한 뽑아내고, 좌석의 배치 또한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미 많은 제조사에서 이러한 컨셉을 자율주행 상용 전기차의 제안으로 보여준 바 있었다.
도요타의 e-palette. 5미터 길이, 2미터 폭에 자그마치 4미터의 휠베이스를 자랑한다. 컴팩트 전기차는 이러한 구성을 참고해서 예를 들어 4미터 길이, 1.7미터 폭에 3미터 휠베이스와 광활한 실내 공간을 뽑아낼 수 있을 것이다.
대형 차량은 이렇게까지 하지 않더라도 거주성을 높일 수 있다. 그런 장점으로 코로나 시대에 대형 SUV 가 더욱 잘 팔리는 현상도 어느정도 설명이 된다. 하지만 작은 차는 다르다는 것이다. 최대한 형상을 수정하여 차량을 ‘이동이 가능한’ 거주공간에 가깝게 발전시키고 ‘이동’ 부분은 최대한 주행보조장치가 담당하게 하는 것이 앞으로 B나 C 세그먼트의 전용모델 전기차량이 생존할 수 있는 길이 될 것 같다.
감격한 박사
전기 모빌리티에 관한 사변(思辨)과 잡설(雜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