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인플레이션 시대이다.
2020년대는 인플레이션과
부족의 시대
사실, 필자는 이미 2020년부터 앞으로의 10년은 으르렁거리는(roaring) 20년대가 되기보다는 아픈(ailing) 70년대가 될 것을 내다보았던 바 있다. 지난 2010년을 정점으로 10년간 내리막을 걷던 원자재의 하락 슈퍼사이클이 심각한 과매도와 많은 원자재 펀드의 청산을 가져오며 서서히 그 막을 내린 것이 2019년이었고, 그 끝은 사상 초유의 원유 선물 마이너스 가격이라는 불꽃놀이로 마무리 지어졌다. 통상 20년을 주기로 하는 원자재 슈퍼사이클의 상승 국면에 두가지 요인이 더 달라붙었다. 미국 연준을 비롯한 각국의 중앙은행은 무한유동성을 들이부었는데, 그 규모가 지난 2008년 금융위기는 불쏘시개 처럼 보일 정도였고, 기간도 더 길어지고 있다.
과잉 유동성은 쇼티지로 촉발된
인플레이션에 기름을 붓고 있다
바야흐로, 인구 구조 변화와 기술 혁명으로 인플레이션 걱정은 별로 없을 것이라던 주류 경제학자들이 금년 늦가을 부터는 인플레이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각국의 중앙 은행들은 이러한 변화에 놀라 (마치 백미러를 바라보며 자동차를 운전하듯, 인플레이션이 모두가 생각한 상단을 뚫고 오를 때 까지도 일시적이라는 주장만 하던 연준 의장 제롬 파월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유동성 공급 속도를 줄여나가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 세상은 돈을 제외하면 모든 것들이 부족하고, 이 부족들은 하나둘씩 실 생활에서 구매하는 재화들의 가격으로 전가되고 있다. 부동산과 주식, 가상화폐 등의 버블을 넘어 모든 재화의 쇼티지를 빌미로 인플레이션이 폭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자동차의 가격이 오르고 있다
우리의 관심인 자동차의 가격도 빠르게 오르고 있다. 다음 그림은 Wolfstreet에서 만들고 있는, 미국의 가장 많이 팔리는 트럭 F-150 XLT와 승용차 캠리 LE 의 가격을 시계열적으로 그린 것이다. 심지어, 실제 판매가격은 2020년 까지만 하더라도 MSRP(일종의 권장소비자가격)에서 20%정도 할인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2021년에는 오히려 MSRP에서 프리미엄이 붙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한다. 인플레이션을 계산할 때는 아래 그림의 녹색 선 처럼 즐거움 보정(hedonic adjust-차의 상품성이 개선되었기 때문에 실질적 가격 상승폭을 조정하는 방식이다)을 해서 이러한 가격 상승폭을 줄여서 발표하고 있기에 통계 자료만 보아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배터리 가격과 무관히
전기차 가격은 계속해서
비싸지고 있다
내연차는 그렇다 치자. 그동안 배터리 팩 가격의 하락 덕에 전기차의 가격은 앞으로 큰 폭으로 하락해서, 소비자들이 내연차를 빠르게 전기차로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팽배했었다. 하지만 그동안의 변화를 보면, 지난 10년간 판매된 전기차의 평균 베이스 모델 가격은 오히려 상승해왔음을 아래 그림을 통해 알 수 있다. 물론 이러한 가격 상승에는 그동안 차량의 크기나 배터리 팩의 크기가 커져왔고, 주행 가능거리와 같은 상품성이 나아진 것도 반영이 되어 있을 것이다.
국내에서 판매되는 아이오닉 모델을 놓고 보더라도 (크기와 배터리 팩 변화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지만, 이 상품성을 차치하고 접근성을 논하는 것이다) 2016년 당시에는 소비자가 주머니에서 지출하는 베이스모델의 실구매 가격이 2000만원 정도에 불과하였다면, 2022년의 아이오닉 5를 구입하기에는 이 실구매가격이 4천만원을 넘어서게 된다. 5년간 kWh당 배터리 가격이 거의 1/2로 감소하였고(Bloomberg NEF 에서는 배터리 팩 기준으로 kWh 당 가격이 2016년 평균 295 달러, 2020년에는 평균 137달러라고 발표했다) , 배터리 팩 크기가 두배보다 조금 더 커졌고 (약 30 kWh-> 약 70 kWh), 소비자가 실부담하는 차 가격은 두배가 된 셈이다.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요즈음 업계 사정을 들어보면 차를 만드는데 필요한 철, 전기차에 많이 들어가는 구리, 그리고 배터리를 만드는데 필요한 니켈, 리튬, 코발트 망간.. 이 모든 것들이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는 이야기가 모든 곳에서 나오는 상황이다. 전기차, 전동화차량의 글로벌 점유율은 매년 25~40% 씩 복리로 증가될 것이 시장의 기대와 넷 제로를 이야기하는 계획표에는 이미 반영되어 있다. 이런 계획이라면 머지않은 2025년에는 전동화 차량의 보급 속도가 2021의 4-5배에 달하게 될 것이라는 것인데, 이런 변화가 쉽지 않아보이는 몇가지 근거들이 있다.
먼저 배터리 가격은 2021년에 최저점을 찍고, 2022년에는 (거의 최초로) 명목 가격의 상승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 (Bloomberg NEF). 원자재 가격 상승의 요인이 반영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나아가 전 세계의 인플레이션은 임금과 제조업 생산 원가에도 반영이 되기 시작하면서, 완성차 제작사들도 판매가격을 꾸준히 올려가고 있다. 단적인 예로 테슬라는 미국 내의 차량 판매가격을 2021년에만도 여러 차례 인상한 바 있다.
결국 이러한 가격 상승 요인은 중고 전기차 가격에 까지 퍼져, 반도체등 물류 대란에 따른 글로벌 신차 품귀 현상과 신차 가격 상승분이 실질적으로 전 세계적 중고 전기차 가격의 상승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심지어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비닐만 뜯은 신차급 중고 전기차는 프리미엄을 붙여 거래가 되고 있는 실정이다. 새로 지은 아파트가 부족하면 부동산 시세가 걷잡을 수 없이 오르듯 상품성이 좋은 전기차의 물량이 부족하여 신차와 중고차의 시세가 동반 상승을 하는 격이다. 이처럼 다방면의 인플레이션 요인이 가격에 반영되며, 결과적으로 전기차의 실 구매 가격 상승을 가져오고, 이는 보급을 둔화시킬 수 밖에 없다.
한가지 더. 앞으로는 전기요금에 탄소 배출의 비용도 조금씩 반영이 될 수 밖에 없다. 이에 대한 정상적인 가격 계상이 이루어진다면 국내의 전기요금은 적어도 4-5년 내 두배 이상 올라야만 한다. 화석연료도 이에 발맞추어 가격이 오르겠지만, 향후 전기차량의 초기 구매 비용을 벌충할 수 있는 경제적 메리트는 큰 폭으로 훼손될 가능성이 높다.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지에 대한
보다 본질적인 고민도 필요하다
아래의 그림은 오늘(21년 12월 27일) 낮에 억세스한 elctricitymap 의 데이터로, 우리나라의 현재 전력 그리드의 kWh 당 탄소 발자국이 507g임을 보이고 있다. 충전손실이 전혀 없다고 가정하고 5km/kWh의 전비로 단순 환산했을 때, 1km 주행에 101.4g 의 탄소 배출이 있다. 현행 아반떼 가솔린 1.6리터 차량이 106g/km, 그랜저 가솔린 2.4리터 하이브리드 차량이 97g/km 인 점을 감안하면, 배터리 전기차는 그리 친환경적이지 못하다. 특히 오늘같은 추운 날 (영하 10도를 오가는) 의 막히는 퇴근길이라면 많은 배터리 전기차의 전비가 3km/kWh 를 하회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이쯤되면, 그리드가 그다지 깨끗하지 않은 우리나라 사정에서는 (특히 중량이 많이 나가는 저효율 전기차들은) 그야말로 석탄을 전기로 변환해서 겉으로만 깨끗한 척, 친환경적인 척 하는 부자들의 장난감에 지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결론
넷 제로 실현을 위해서 모든 차량을 빠르게 전동화한다는 계획이 과연 실현 가능한 것인지 의문스럽다. 과거에 생각했던 것 처럼, 적당한 크기의 배터리를 탑재하고 효율성이 높은 배터리 전기차의 가격을 떨어뜨리면서 모든 사람이 접근할 수 있게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은 실현되지 않았다. 차는 무거워졌고 배터리 팩은 그만큼 더 커졌고, 가격은 더욱더 올라버렸다.
전기차에 대한 대중의 접근성은 떨어지고, 탄소 감축이라는 원래 의도에서도 점점 멀어지기만 하는 기분이다. 그린플레이션과 글로벌 쇼티지의 압력이 더해지며, 이제 전기차는 정가를 내고는 제 때 살 수도 없는 물건이 되어버렸다. 새로 나오는 번쩍거리는 고가의 전기차들을 보면, 땅 속에 한정되어 있어서 여럿이서 나누어 써야만 하는, 배터리의 재료가 되는 금속 원자재들을 구매력이 있는 부자들만 독점해버리는 느낌이 든다. 그렇기에 전 세계적인 전동화 트렌드가 갈수록 반갑지가 않고, 오히려 겁이 난다. ‘이러다가는 다 죽어’ 라는 한 드라마의 대사가 떠오르는 것 같아 씁쓸한 기분이 드는 연말이다.
감격한 박사
전기 모빌리티에 관한 사변(思辨)과 잡설(雜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