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➊ 테슬라가 처음 원통형 배터리를 사용하기 시작한 이유는, 1) 상대적으로 수급이 용이하고 2) 배터리 제조사와의 협상에서 불리한 위치를 피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었습니다.
➋ 이후 테슬라는 원통형 배터리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전기차 전용 플랫폼과 Structual Pack이란 새로운 구조를 설계하고, 4680이란 새로운 배터리 폼팩터를 개발합니다.
➌ 뿐만 아니라 시장 변화에 따라 원통형 배터리의 높은 안전성과 생산성이 주목받으면서, 테슬라는 현재까지 원통형 배터리를 메인 폼팩터로 고집하고 있고, 경쟁자들 역시 이에 주목하며 모방하려 하고 있습니다.

 

원통형? 파우치형? 각형?

테슬라와 전기차 산업에 대해 관심 있는 분이라면 배터리 셀의 폼팩터에 대해 한번쯤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현재 전기차에 사용되는 배터리 셀의 폼팩터는 크게 3종류로 나뉩니다. 파우치형, 각형, 그리고 원통형인데요.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3가지 폼팩터의 특징과 장단점을 ‘간단히만’ 집고 넘어가보려 합니다. (만약 3가지가 어떻게 다른지 이미 알고 계신 분이라면, 다음 파트로 넘어가셔도 좋습니다.)

 

3가지 폼팩터간 비교 (사진 출처: News1)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 3가지는
일단 ‘형태’부터 다릅니다.

각형은 이름 그대로 직사각형의 알루미늄 금속 캔 형태입니다. 파우치형은 금속 캔 대신 직사각형의 플라스틱 재질 케이스로 되어 있고요. 원통형은 원기둥 형태의 금속 캔입니다.

‘크기’도 다른데요. 각형과 파우치형은 상대적으로 크기가 커서 중대형 배터리로 분류되는 반면, 원통형은 크기가 작아 소형 배터리로 분류됩니다. 크기가 작으면 하나의 배터리 팩을 만들기 위해 더 많은 셀이 필요하겠죠. 실제로 파우치형을 사용하는 폭스바겐 ID.4에는 약 288개의 셀이 사용되는 반면, 원통형을 사용하는 테슬라 모델 Y에는 약 4,400여개의 셀이 사용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렇게 상이한 형태와 크기로 인해, 각 폼팩터의 장단점 역시 갈립니다. 각형은 단단한 금속 캔 안에 배터리를 보관하는 만큼, 상대적으로 외부 충격에 강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파우치형은 케이스가 플라스틱 재질인만큼 형태 변형이 용이하지만 안전성은 좀 더 취약하고요. 원통형은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만들기 쉽다는 장점이 있지만, 팩 에너지 밀도가 낮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신기하게도, 전기차 제조사마다 사용하는 배터리 폼팩터가 서로 상이합니다. 미국 OEM들은 파우치를, 중국 OEM들은 각형을 주로 사용하고 있는데요. 테슬라는 특이하게 전통 OEM들이 잘 사용하지 않는 원통형 배터리 사용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왼쪽부터 파우치형, 원통형, 각형 배터리의 모습 (사진 출처: Battery packaging – Technology review, Eric Maiser)

 

테슬라는 왜
원통형을 쓰기 시작했을까?

2000년대 초반, 테슬라는 일찍이 그 최초의 제품인 로드스터부터 원통형 배터리를 채택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한데요. 원통형의 수급이 각형이나 파우치형보다 원활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폼팩터와 원통형의 가장 큰 차이점은, 원통형의 사이즈가 ‘표준화’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파우치형이나 각형은 고객의 니즈에 맞게 제작되는 커스터마이징 제품이라 차종/고객사에 따라 사이즈가 천차만별입니다. 바꿔서 말하면, 파우치/각형 배터리를 구매하기 위해서는 기존에 다른 제조사에 판매 중인 제품을 사다 쓸 수 없다는 겁니다. 파우치형/각형 배터리를 쓰고 싶다면, 테슬라만을 위한 전용 제품을 새로 개발해서 주문 제작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배터리를 새로 개발하고 생산하기 위해서는 최소 1~10만개 단위의 주문 수량을 만족시켜야 합니다. 배터리 제조사 입장에서도 나름 많은 돈과 인력을 들여 새로운 부품을 개발하고 생산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이제 막 자동차 연구를 시작해서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있는 스타트업이 개당 수 천만원이나 하는 배터리를 몇 만 개씩 주문할 수 있었을까요?

설사 배터리 제조사를 어르고 달래서 소량 주문에 성공했다고 해도, 그 주문 조건을 협의하는 데 있어 테슬라는 절대적 ‘을’이 돼 끌려다닐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전용 제품이라는 특성상, 공급업체를 바꾸기 쉽지 않아 하나의 배터리 제조사에 절대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었을테니까요. 당시 테슬라는 배터리가 없으면 당장 제품을 만들지 못하는 절박한 상황에 놓인 작디 작은 스타트업이었습니다.

반면에, 원통형 배터리는 그 때부터 지금까지도 전세계적으로 표준화된 사이즈의 제품이 판매되고 있습니다. 2000년대 초반 테슬라가 배터리를 찾아다니던 당시에는 지름 18mm, 세로 65mm의 1865 배터리가 여러 제조사에 의해 양산 판매되고 있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전기차가 전무하다시피했던 시절이라 노트북이나 캠코더 같은 IT 제품에 쓰이고 있었습니다.

이런 1865 배터리를 최초로 전기차에 적용한 게 테슬라였는데요. 원통형 배터리는 표준화된 사이즈로 여러 공급사에 의해 대량 공급되고 있었기에, 전용 제품을 개발하지 않아도 됐고, 소량 구매도 가능했으며, 쉽게 공급사를 바꿀 수도 있어서 공급사 입김에 휘둘리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테슬라는 일찍부터 원통형 배터리를 사용해 전기차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테슬라보다 몇 년 뒤쳐져 같은 길을 걸어가고 있는 리비안이나 루시드 모터스 같은 EV스타트업들이 원통형 배터리를 사용해 전기차를 만들고 있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의 이유라고 보면 됩니다.

 

 

테슬라는 왜 지금도
원통형을 쓸까?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아마 이런 의문이 생기실 겁니다. “사업 초반에 작은 스타트업이라 배터리 구하기 힘들고 제조사에 끌려다니기 싫어서 원통형 배터리를 썼다는 건 이해가 갑니다. 그런데 이제는 테슬라가 예전만큼 작은 회사가 아니고 오히려 배터리 제조사보다 커졌는데, 왜 아직도 원통형을 쓰나요?” 라고 말입니다. 실제로 테슬라는 CATL의 각형 배터리를 일부 사용하고 있지만, 현재까지도 메인 폼팩터로 원통형 배터리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사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4680이라는 새로운 형태까지 개발하면서 원통형 배터리의 발전과 보급을 리드하고 있는데요. 이렇게 테슬라가 원통형 배터리를 고수하는 이유는, 시간이 흐르면서 원통형 배터리의 단점은 보완되고, 장점이 부각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1. 원통형 배터리에는
어떤 단점이 있나?

각형/파우치형에 단점이 있는 것처럼,
원통형에도 분명히 단점이 있습니다.

 

셀, 모듈, 팩의 대략적인 개념 (사진 출처: Automotive Cells Co)

 

첫째로, 에너지 밀도가 낮습니다.

“아니 언론 기사에는 원통형이 에너지 밀도가 높다고 나와있는데, 무슨 소리냐?”라고 하실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에너지 밀도는, ‘셀’이 아닌 ‘팩’ 단위의 에너지 밀도입니다.

낱개 단위의 ‘셀’ 여러 개를 묶어 ‘모듈’을 만들고, 다시 ‘모듈’ 여러 개를 묶어 ‘팩’을 구성함으로써 전기차 배터리가 완성돼 자동차 동력원으로 쓰일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앞서 말한 것처럼, 원통형은 크기가 작고 둥근 원기둥 형태입니다. 때문에, 팩이나 모듈로 구성했을 때 아래 그림처럼 구조상 필연적으로 셀과 셀 사이의 빈 공간, Dead Space가 많이 발생합니다. 바꿔 말하면, 배터리를 채우지 못하고 버리는 공간들이 생긴다는 겁니다. (물론 실제 원통형 배터리 팩에서는 이 Dead Space를 모두 빈 공간으로 그대로 버리지는 않고 발화 방지를 위한 냉각제, 발화 방지 물질을 채웁니다)

때문에 이런 Dead Space가 상대적으로 적은 파우치형이나 각형에 비해, 원통형은 팩 단위 에너지 밀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로, 팩으로 만들기 까다롭습니다.

파우치/각형은 원통형보다 사이즈가 큽니다. 때문에 파우치/각형 셀로 구성된 배터리 팩에는 300-400개 내외의 셀이 사용됩니다. 반면 원통형은 사이즈가 훨씬 작기 때문에 1865 기준으로 약 7,000개, 2170 기준으로 약 4,000개 정도의 셀이 있어야 하나의 배터리 팩을 만들 수 있습니다.

 

7,000여 개의 18650 셀로 구성된 모델 S 배터리 팩 (사진 출처: InsideEVs)

 

이렇게 셀 개수가 많으면
무슨 문제가 있을까요?

일단 제조부터 까다로워집니다. 일단 수 천 개의 셀을 일일이 용접해서 연결해야 하겠죠? 테슬라 모델 Y에는 약 4,400개의 2170 배터리가 들어간다고 합니다. 팩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셀당 4번의 용접을 거쳐야 한다고 하는데요. 때문에 팩 하나를 만들기 위해 셀 연결에만 무려 17,600번의 용접이 필요한 겁니다.

관리도 까다로워집니다. 충전이나 방전을 진행할 때, 특정 셀만 과도하게 충전된다거나, 과도하게 방전된다면 화재나 불량이 발생합니다. 때문에 충방전 시 수많은 배터리 셀의 개별 상태를 일일이 점검하고 이에 적합한 조건으로 사용해야 하는데요. 이런 관리를 위해 팩에는 BMS(Battery Management System)이라는 부품이 들어갑니다. 그런데 셀이 300개일 때와, 4,000개일 때를 비교하면 어느 쪽이 더 관리가 어려울까요? 당연히 후자가 압도적으로 힘들겁니다. 때문에 원통형 배터리 팩은 더 까다롭고 복잡한 셀 관리 기술을 필요로 합니다. 이런 단점들이 이제껏 원통형 배터리 시장의 발목을 잡아왔는데요. 테슬라는 이를 자신만의 방법으로 극복하면서 원통형 배터리를 누구보다도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첫째, 낮은 에너지 밀도 -> 차량과 배터리 팩 구조 재설계로 극복

테슬라는 먼저 차량 구조부터 뜯어 고칩니다. 과거 통상적인 전기차는 내연기관을 들어내고 그 자리에 배터리를 채우는, ‘개량형 내연기관’의 형태였습니다. 내연기관 크기에 배터리를 맞추다 보니 절대적 공간의 크기부터 부족했고, 모양이 맞지 않아 배터리를 넣지 못하는 Dead Space도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맞춤형 제품인 파우치/각형이야 내연기관 크기에 맞게 새로 배터리를 개발하면 되겠지만, 이미 크기가 1865/2170으로 정형화되어 있는 원통형 배터리는 그렇지 못하니 에너지 밀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차량 하부에 직사각형 형태로 배터리 팩을 배치한 스케이트보드 형태의 플랫폼 (사진 출처: 테슬라)

 

그래서 테슬라는 자동차를 처음부터 다시 설계하는데요. 2014년 모델 S부터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도입합니다. 기존의 ‘내연기관 개량형’이 자동차를 만들고 여기에 맞는 배터리 팩을 만드는 방식이었다면, ‘전기차 전용 플랫폼’은 배터리 팩을 먼저 만들고 여기에 맞는 자동차를 만드는 방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스케이트보드처럼 자동차 하부에 넓게 배터리 팩을 깔고, 바퀴 사이에 모터를 넣습니다. 자동차 구조 자체를 배터리를 탑재할 공간을 충분히 확보하는 방식으로 새로 설계한 겁니다. 이렇게 되면 배터리를 넣을 수 있는 절대적인 공간 자체가 늘어나는 것은 물론이고, 원통형에 적합한 크기로 공간을 설계할 수 있기에 Dead Space까지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한 걸음 나아가, 테슬라는 Structural Pack이란 이름의 혁신적인 배터리 팩 구조를 도입하려 합니다. 전기차 배터리를 만들기 위해선 셀을 모아 모듈을 만들고, 다시 모듈을 모아 팩을 만들어 자동차에 넣는다고 했었죠? 여기서 모듈과 팩 공정을 생략하고, 셀 상태에서 바로 자동차 프레임에 끼워 넣어 사용하는 게 바로 Structural Pack의 방식입니다.

자동차 하부 프레임은 사람의 척추나 건물의 철골 기둥처럼 자동차 전체가 뒤틀리지 않게 잡아주는 뼈대 역할을 해주는데요. 원통형 배터리는 그 외피가 금속 캔으로 되어 있기에, 프레임과 함께 사용 시 뼈대 역할을 할 수 있는 충분한 강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Structural Pack (또다른 이름으로는 “Cell to Chassis”)이란 구조로 기존에 모듈과 팩이 차지했던 빈 공간에 더 많은 셀을 넣음으로써, 팩 단위의 에너지 밀도를 극대화하는 것이 테슬라의 계획입니다.

 

팩과 모듈을 생략한 Structural Battery Pack의 개념도 (사진 출처: 테슬라)

 

둘째, 팩 제조/관리의 높은 난이도 -> 제조/관리가 수월한 새로운 배터리 셀 폼팩터 개발

앞에서 언급한 Structural Pack 구조와 함께, 테슬라는 2020년 배터리 데이 행사에서 4680이란 새로운 원통형 배터리를 발표하는데요. 말 그대로 지름 46mm, 높이 80mm의 ‘대형화’된 원통형 배터리입니다. 기존 2170 배터리보다 부피가 5배나 크기에, 배터리 팩을 구성하는 데 더 적은 숫자의 셀을 필요로 하는데요.

 

이렇게 셀 숫자가 적어지면 어떤 장점이 있을까요?

일단 생산성이 올라갑니다. 더 빠르고 쉽게 만들 수 있다는 건데요. 기존 2170에서는 배터리 팩 하나에 4,400개의 셀이 필요했다면, 4680은 830개의 셀만 있으면 됩니다. 최근 Reuters 통신의 보도에 의하면, 기존 2170의 셀당 용접 필요 횟수가 4번이었다면, 4680은 그 절반인 2번으로 줄어든다고 하는데요. 기존에 2170 팩에서 셀 연결에 17,600번(4,400*4)의 용접을 필요로 했다면, 4680 팩에선 그 10분의 1도 안되는 1,660번(830*2)으로 줄어드는 겁니다.

뿐만 아니라 셀 관리도 한결 쉬워지겠죠. BMS로 관리해야 할 셀의 갯수가 4,400개에서 830개로 줄어듭니다. 개수로만 단순 계산하면 4680 배터리 팩의 관리 난이도는 2170 대비 5분의 1 수준은로 낮아지는 겁니다.

이렇게 테슬라는 배터리 팩과 차량 구조를 처음부터 새롭게 설계하고 새로운 폼팩터까지 개발하면서 원통형 배터리의 단점을 적극적으로 보완해나가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테슬라는 원통형 배터리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고집해나갈 수 있는 겁니다.

 

셀 하나의 불량이 열 폭주를 야기하고, 다시 셀 간 열 폭주 전파로 이어집니다 (사진 출처: H.B.Fuller)

 

2. 원통형 배터리에는
어떤 장점이 있나?

다른 한편으로는, 시장 변화에 따라 기존에  원통형 배터리가 갖고 있던  장점들이 더욱 부각되고 있습니다.

 

첫째로는 안전성입니다. 원통형은 다른 폼팩터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안전합니다.

배터리 팩의 화재를 막기 위해 가장 중요한 기능 중 하나는 열 폭주 전파(Thermal Propagation) 방지입니다. 쉽게 말하면, 불량 혹은 외부 충격에 의한 손상으로 하나의 배터리 셀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때 다른 셀로 전파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겁니다. 전파 방지 혹은 지연에 실패한다면, 하나의 셀만 손상돼도 배터리 팩 전체가 불타버리면서 인명피해로 연결됩니다. 때문에 셀 간의 화재 전파를 근본적으로 예방하거나, 최소한 그 전파 속도를 늦춰 탑승자의 대피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는 것이 배터리 설계에 있어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한국 배터리 회사들의 주요 제품인 파우치형 배터리의 경우, 플라스틱 성분의 케이스로 인해 상대적으로 외부 충격으로 인한 발화에 취약하고, 셀 간 연쇄발화로 연결되기도 쉽습니다. 반면 원통형 배터리는 금속 캔을 케이스로 사용하기에 상대적으로 내구성이 높고 화재 전파 방지에 유리합니다. 뿐만 아니라 단 셀의 온도가 급격하게 상승할 시 배터리 셀을 연결하는 금속 와이어가 녹아내려 끊어지며 전류를 차단하는 퓨즈 역할을 함으로써, 화재 전파를 방지해준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비유로 말하자면, 파우치 배터리가 많은 계란을 한 바구니에 몰아 넣었다면, 원통형은 여러 바구니에 나눠 넣은 셈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셀이 금속 와이어로 연결된 원통형 배터리 팩의 모습 (사진 출처: EV West)

 

전기차 보급과 함께 화재 발생 빈도도 높아져 감에 따라 배터리의 안전성 확보가 점점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화재를 염려해 전기차를 외면하는 소비자들도 늘어가고 있고, 세계 각국의 정부도 전기차의 화재 안전성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나가고 있습니다. 이런 국면으로 인해 원통형 배터리의 안전성이란 장점은 앞으로 점점 더 주목받을 수밖에 없을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두번째로는 생산성입니다.

원통형은 다른 폼팩터에 비해 대량 생산에 유리합니다. 상대적으로 공정이 단순하고 쉽기 때문인데요. 배터리 셀 제조 공정은 크게 3가지, 전극 공정, 조립 공정, 활성화 공정으로 구성됩니다. 간단히 설명하면 전극 공정에서 얇은 금속 박막에 전극을 코팅하고, 조립 공정에서 이를 둘둘 말거나 쌓아서 케이스에 넣습니다. 그리고 나면 마지막으로 활성화 공정에서 충방전을 반복하면서 전기적 성질을 띠게 만들어 배터리 셀이 완성됩니다.

그런데 첫번째와 세번째인 전극, 활성화 공정에선 원통형/파우치형/각형 3가지 폼팩터 간에 큰 공정 차이가 없습니다. 두번째 공정인 조립 공정에서 전극을 어떤 형태로 어떤 케이스에 넣냐가 폼팩터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데요.

특히 전극을 어떤 형태로 만들어 케이스에 넣느냐에 있어 큰 차이가 있습니다. 파우치형과 각형의 경우, 전극을 일일이 잘라서 붙이고 쌓는 ‘스태킹(Stacking)’ 방식을 사용합니다. 가장 최신화된 스태킹 공법은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이 사용하고 있는 Z-스태킹이란 방법인데요. 아래 그림처럼 분리막을 Z형태로 만들어 그 사이사이에 양극과 음극을 넣어 전극을 쌓는 방식입니다. 그림만 봐도 뭔가 복잡하고 느릴 것 같아 보이는데요.

 

Z모양의 분리막 사이에 양극과 음극을 쌓는 Z스태킹 공법 (사진 출처: SK이노베이션)

 

반면에 원통형은 전극을 원형으로 말아서 금속 캔에 넣는 ‘와인딩(Winding)’ 방식을 사용합니다. 복잡할 것 없이 두루마리 휴지처럼 둘둘 말면 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쉽고 빠르게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만드는 방식이 단순할 뿐만 아니라 생산을 시작한 역사도 오래됐기에 원통형은 더 높은 수율로 더 많은 셀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전기차가 빠른 속도로 보급되면서 배터리 셀 메이커들이 수 조 원대 증설 경쟁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것마저 부족해서 테슬라와 폭스바겐 같은 OEM들은 직접 배터리 제조에 나서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게 배터리 수급이 불안정하고 쇼티지가 우려되기 때문일텐데요. 이런 상황으로 인해, 더 빠른 속도로 더 쉽게 제작이 가능하다는 원통형 배터리의 장점이 더욱 더 부각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전통 제조사들이 테슬라를
‘잘’ 따라할 수 있을까?

여기까지 테슬라가 왜 원통형 배터리를 쓰기 시작했고, 왜 지금까지 원통형 배터리를 메인 폼팩터로 고집하고 있는지에 대해 길게 이야기해보았는데요. 제가 이야기한 이유들 때문인지, 혹은 다른 숨겨진 이유가 있어서인지는 몰라도, 이제까지 파우치/각형에만 의존하던 전통 자동차 OEM들도 테슬라를 따라 원통형 배터리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했습니다. BMW, GM, 스텔란티스 등 쟁쟁한 OEM들이 원통형 배터리를 셀 메이커로부터 공급받거나 직접 개발하는 방안을 추진 중에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다른 제조사들이 원통형 배터리를 ‘테슬라만큼 잘 사용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단순히 배터리 폼팩터만 동일하게 가져다 쓰는 것이 아니라, 그 단점을 상쇄하고 장점을 극대화하는 테슬라의 개발, 제조 역량까지 따라잡을 수 있을까요? 이 또한 재미있게 지켜볼만한 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일렉트릭 쇼크
찌릿찌릿하게 읽는 테슬라와 전기차 시장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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