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➊ 최초의 스마트폰이 아니었던 아이폰이 여타 경쟁자를 압도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혁신적인 UX였습니다.
➋ 아이폰은 관성스크롤과 멀티 터치로 기존 터치 스크린 유저들의 불편한 사용 경험을 개선하는 데 집중했는데요.
➌ 자동차가 디지털화되면서, 소비자 경험을 최적화하기 위한 차량 내 UX 설계 역시 앞으로 더욱 더 중요해질 겁니다.
➍ 테슬라는 일찍부터 운전 자동화와 이를 통한 운전자의 자유도 증대를 염두에 두고 운전석을 설계했습니다.
➎ 가장 미래적이라고 해서 가장 완벽한 것은 아니지만, 테슬라의 UX 지향점이 곧 모든 경쟁자가 카피하게 될 미래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친숙하지 않은 물건을 처음부터
노력이나 어려움 없이 사용할 수 있다면,
이는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누군가 세심하게
신경 써 잘 디자인한 덕분이다”
– 도널드 노먼
UX란 단어는 언제부터
귀에 들려오기 시작했을까?
안녕하세요, ⚡일렉트릭 쇼크입니다. (◍’◡’◍)
UX라는 단어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보통 UI와 하나로 묶여 “UI/UX”라는 단어로 사용되는데요. UI가 우리가 눈으로 마주하는 컴퓨터 입출력 장치의 외관을 디자인하는 일이라면, UX는 단순한 겉모습을 넘어 사용자가 컴퓨터를 사용하면서 느끼는 경험을 총체적으로 설계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UX라는 개념은 언제 생겨난 걸까요? UX라는 단어 자체는 1980년대 인지과학자 도널드 노먼이 애플에 합류하면서 직접 만들어낸 신조어입니다. 하지만 이런 생소한 단어가 일반 대중인 우리의 귀에까지 들려오기 시작한 건 2010년대 초반, 스마트폰이 대중화되기 시작하면서부터인데요.
스마트폰 대중화 이전의 우리는, 업무를 하거나 게임/음악을 즐길 때에만 개인용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아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2007년 1월 9일, 아이폰이 출시되고 스마트폰이 피처폰을 빠르게 대체하면서, 우리는 일상의 대부분을 컴퓨터에 의존하기 시작했죠. 스마트폰을 이용해 지하철에선 유튜브를 보면서 이동하고, 맛집에 가서 사진을 찍어 편집해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하고, 구글맵으로 여행지에서 숙소와 볼거리를 찾습니다.
이렇게 하루의 대부분을 컴퓨터와 함께 보내게 되면서, 어떻게 하면 사람과 컴퓨터 사이의 상호작용을 더 효율적이고 즐겁게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연구에도 불이 붙었습니다. 이런 사람-컴퓨터 간의 상호작용을 다루는 학문을 HCI(Human Computer Interaction)라고 하는데요. 그 연구 범위의 하나인 UX 디자이너에 대한 수요 역시 스마트폰 보급과 함께 급증하기 시작합니다.
2021년 현재, 전세계적으로 스마트폰의 보급이 완료되면서, 스마트폰 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들었다고들 합니다. 하지만, UX 디자인의 중요성은 앞으로 더욱 커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용 PC, 스마트폰에 이은 Next Big Thing으로 “자동차”의 IT 제품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인데요.
아이폰이 옴니아2보다
우월했던 이유
자동차가 IT 제품이 될 것이라고들 말하지만, 사실 자동차는 이미 IT 제품이 되어 버렸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딜로이트의 분석에 따르면, 이미 10년 전인 2010년 차량 내 전자 부품에 드는 비용이 자동차 전체 원가의 35% 가량을 차지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는 10년 뒤인 2030년엔 절반인 50%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하는데요. 무식하게 하드웨어만 들어간게 아닙니다.
IT 제품과 거리가 멀어보이는 포드 F150 픽업 트럭에조차 1억 5천만 줄의 코드가 들어갈 정도로, 자동차는 이미 고도로 복잡하게 설계된 IT 제품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스펙 좋은 전자 부품을 채워 넣는다고 해서 좋은 IT 제품이 되는 건 아닙니다. 사용자가 제품을 이용하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그리고 어떻게 이를 최적화할 수 있을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한데요.
아이폰은 이런 고민에서
시작된 제품이었습니다.
일단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아이폰은 최초의 스마트폰이 아니었습니다. 제품 출시 자체는 오히려 노키아나 마이크로소프트가 앞섰죠. 기존 핸드폰 소비자들이 요구하던 전통적인 하드웨어 기준을 맞추지도 못했습니다. 당시 삼성전자가 자랑하던 옴니아2와 비교하면, 아이폰은 외장 메모리도 지원하지 않았고, 액정 해상도도 떨어졌습니다. DMB나 영상통화도 불가능했고, 배터리 수명까지 짧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을 집어삼킬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아이폰만의 혁신적인 UX에 있었다고 봅니다.
피처폰과 PDA 시절을 기억하시나요? 화면을 아래로 내리기 위해선 아래 화살표를 무한정 클릭하거나, 좁고 작은 스크롤 바를 터치해 힘겹게 움직여야 했습니다. 아무리 많은 기능을 담아도, 사용자가 제대로 읽고 활용할 수 없는 환경이었죠. 아이폰은 멀티 터치와 관성 스크롤 기능을 이용해, 기존 터치스크린 사용자들이 느꼈던 불편함을 일거에 해소했습니다. 작은 화면으로도 많은 내용을 쭉쭉 내리면서 불편함 없이 찾아보고 읽을 수 있게 됩니다. 좋은 IT 제품의 대명사인 아이폰은, 좋은 하드웨어가 아닌 좋은 사용자 경험에 대한 깊은 고민에서 출발한 겁니다.
자동차의 미래도 마찬가지일거라고 봅니다. 기술 도입 초반부인 지금이야 앞다투어 긴 주행거리와 짧은 충전 시간으로 경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런 하드웨어 스펙은 모두 비슷비슷한 수준으로 평준화되겠죠. 그리고 나서는 같은 하드웨어를 가지고도 누가 더 나은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느냐가 승부를 가를거라고 생각합니다.
모델Y 디자인에는 특별한
계획이 담겨 있습니다
그렇다면 “바퀴 달린 아이폰”이라고 불리는 테슬라는 UX에 있어 어떤 고민을 했을지,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데요.
얼마 전 모델 Y를 타고 양양에 다녀오면서, 테슬라가 무엇을 고민했을지 곰곰히 생각을 되짚어 보았습니다.
1. 왜 물리 버튼을 없앴을까?
테슬라 앞좌석에 앉으면 뭔가 허전하고 텅 빈 느낌을 받는다는 건 이제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테슬라는 운전과 관련된 최소한의 기능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물리 버튼을 스크린 안에 집어넣었습니다. 네비게이션은 물론이고 배터리 상태 점검, 히터와 와이퍼 작동, 오디오, 게임이나 영화 같은 인포테인먼트 기능까지 모두 터치스크린 하나로 작동하도록 만들어놨으니까요. 이렇게 스크린 하나로 모든 걸 조정하는 심플함에서 사람들은 아이폰과 테슬라 자동차의 공통점을 찾기도 합니다.
왜 이렇게 물리 버튼을 최소화하는 선택을 한 걸까요? 많은 이들이 언급하는 것처럼 단순히 더 이쁘거나, 편리하거나, 최첨단 IT 제품의 느낌을 내기 위해서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미래 자동차가 나아갈 미래라고 말하는 스마트폰을 생각해보면 답이 나오는데요.
눈으로 보지 않고도 입력할 수 있는 고유의 장점이 있긴 하지만, 스마트폰에 “물리 버튼”이 없다는 이유로 불편함을 토로하는 사람은 이제 없습니다. 키보드 버튼 자체를 자주 안 쓰기 때문입니다. 이제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자판 없이 보냅니다. 우리는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뭔가를 “보는 데” 가장 많은 시간을 씁니다. 유튜브로 영상을 보고, 네이버로 궁금한걸 찾아보고,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으로 주변 사람의 일상을 찾아봅니다. 문자로 대화를 나누는 카카오톡에서조차 내가 원하는 말을 쓰는 것만큼 단톡방에서 남의 이야기를 보는 데 많은 시간을 쓰죠.
화면을 차지하는 물리 버튼은 뭔가를 보는 데 있어 눈에 거슬리는 장애물입니다. 차라리 버튼을 없애고 더 큰 화면으로 보는 게 낫죠.
자동차도 마찬가지입니다. 오토파일럿과 FSD 기능을 통해, 이미 차선 변경, 차간 간격 조정, 속도 유지 등 운전의 많은 부분을 자동차에 맡길 수 있게 됐습니다. 도시에서 도시로 이동하는 장거리 운전을 하면 대부분의 시간을 고속도로에서 보내게 되는데, 이 고속도로 운전을 할 때 많은 부분을 AI에 맡기고 한시름 놓을 수 있을 정도죠. 이런 운전 자동화 기능은 계속 고도화될 것이고, 점진적으로 발전시켜 최종적으로는 모든 것을 컴퓨터에 맡기는 완전 자율주행을 이루겠다는 것이 테슬라의 계획입니다.
이 계획대로라면, 운전자가 기존 자동차의 물리 버튼을 직접 누를 빈도 자체가 크게 줄어들 겁니다. 운전 자체를 컴퓨터가 알아서 해주는 것은 물론이고, 실내 온도 조절, 와이퍼 작동까지 모두 자동으로 이뤄지는 겁니다. 인간은 스크린을 통해 드라마를 보거나 게임을 하고요. 테슬라의 터치 스크린은 일찌감치 이렇게 운전 자동화 기능을 통해 운전자가 많은 자유를 부여 받는 미래를 가정하고 설계돼 있는 겁니다.
2. 내 자동차는 왜 보여주는 걸까?
모델 Y를 운전하면, 메인 스크린 좌측에 내 자동차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내 차 주변으로 달리는 다른 자동차와 보행자까지 실시간으로 탐지해서 보여주는데요. 사실 운전하면서 볼 일이 없는 화면입니다. 이런 쓸모없게 느껴지는(?) 화면이, 운전자가 시선을 조금만 돌려도 보이는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습니다. 네비게이션이었다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단순히 주변에 차량과 사물이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왜 굳이 큰 스크린의 절반이나 할애해서 이런 화면을 보여주는 걸까요?
그 이유는, 게임에서 미니맵의 존재 이유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미니맵의 핵심 기능 중 하나는, 플레이어를 불안하지 않게 하는 겁니다. LOL이란 게임을 하면 내가 전체 지도 상의 어디쯤 와있고, 내 주변에 어떤 아군과 적군이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싸움이 일어나면 팀원끼리 서로에게 주의 신호를 보내기도 하고요. 주변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 나 자신이 알고 있고, 여기에 바로 대처할 수 있다는 걸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플레이어는 “안심”할 수 있게 됩니다.
오토파일럿 기능을 통해 운전대를 AI에 맡긴 테슬라 운전자들 역시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AI가 종종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판단을 내리는 것은 이제 익히 알려진 사실입니다. 여기에 더해, 운전자가 직접 앞뒤 좌우를 직접 살피지 않은 상황에서 자유자재로 차선변경과 좌회전이 진행된다면, 당연히 불안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이렇게 불안한 운전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모델 Y는 메인 스크린을 통해 자신의 차량과 그 주변에 있는 사물들의 형체를 보여줍니다. 한 마디로 “내가 이렇게 앞뒤 좌우에 무엇이 있는지 잘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운전자에게 확인시켜줌으로써 불안을 덜어주는 겁니다.
뿐만 아니라, 테슬라는 주변 상황을 우리가 기대한 것보다 더 정확하게 인식합니다. 단순히 차량이 지나간다 정도가 아니라, 옆에 있는 차량이 세단인지 SUV인지 혹은 트럭인지까지 구분합니다. 한국에는 배포되지 않았지만, FSD 베타버전의 경우에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주변 차량의 후미등이 켜졌는지, 내 앞의 신호등이 무슨 색깔인지까지 구분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놀라운 속도로 발전해 나가고 있는데요. 이렇게 점점 완성도가 높아진다면, 역사상 가장 많은 돈이 들어간 실시간 미니맵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합니다.
이렇게 테슬라는 컴퓨터와 인간이 상호작용하면서 발생하는 두려움과 불안함을 메우기 위한 장치까지 일찍부터 세심하게 설계해두었다는 데서 한번 더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이폰과 옴니아를
비교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물론 가장 미래적인 것이라고 해서 가장 완벽한 것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불만을 토로하는 것처럼, 테슬라의 터치스크린 중심 UX에는 아직 개선해야할 사항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자동차라는 거대한 컴퓨터와 인간 운전자 사이의 상호작용에 있어, 테슬라가 가장 앞장 서서 가장 깊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2021년 현재, 많은 전통 자동차 OEM들이 테슬라를 잡겠다며 앞다투어 경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래 모빌리티의 지향점을 가장 먼저 몸소 경험해볼 수 있는 차는, 변함없이 테슬라입니다.
모델 Y를 타고 양양에 다녀오며
찍은 사진들입니다. *(^_^)*
Reference
– 표지 사진 출처: UXLx
– A brief history of user experience (Ali Rushdan Tariq, 2015)
– Semiconductors – the Next Wave: Opportunities and winning strategies for semiconductor companies (Deloitte, 2019)
– 2020 Automotive Defect & Recall Report. (Stout, 2020)
일렉트릭 쇼크
찌릿찌릿하게 읽는 테슬라와 전기차 시장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