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km당 배출 허용량 내년 95g
2021년 1g초과마다 벌금 12만원… 100년 전통 깨고 전기차 개발 가세
전동화-자율주행에 6조 넘게 투입… SUV에도 전기모터 순차적 적용
페라리-포르셰-맥라렌 등도 “2025년후 전동 파워트레인 탑재”
지난달 21일(현지 시간) 고급 스포츠카 브랜드인 마세라티는 본사가 위치한 이탈리아 모데나에서 위장막을 두른 2인승의 신형 스포츠카를 공개했다. 전기모터를 단 신차의 출시를 6개월가량 앞두고 자체 개발한 전동화 파워트레인을 탑재한 신차를 슬쩍 선보인 것이다.
이탈리아 볼로냐의 마조레 광장에 있는 조각상인 넵투누스(바다의 신 포세이돈)가 든 삼지창을 상징으로 1914년 설립된 마세라티가 새로운 시대로 빠르게 진입하고 있다.
이 회사는 앞선 11일 모데나 공장에서 12년간 4만여 대를 판매한 그란투리스모의 단종식도 열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다비데 그라소 마세라티 최고경영자(CEO)는 “마지막 그란투리스모 차량에 ‘제다(Zeda)’라는 이름을 붙였다”면서 로마자로 2020을 의미하는 ‘MMXX’라는 티저도 공개했다. 제다는 모데나의 방언으로 알파벳 ‘Z’를 의미한다. 제다의 철자에는 끝을 의미하는 Z와 시작을 의미하는 A가 들어 있다. 내연기관 엔진으로 100년의 전통을 이어온 마세라티가 전기차를 내놓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전동화와 자율주행 기술을 위해 50억 유로(약 6조5000억 원)를 투입하는 마세라티는 내년부터 신차 외에도 기존의 기블리, 르반떼 같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등에도 순차적으로 전기모터를 적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미래에도 내연기관차 특유의 엔진 감성을 선호하면서 운전의 재미를 느끼려는 부유층 소비자들이 언제든 지갑을 열어줄 것이라고 자신했던 슈퍼카 브랜드들이 전기차 개발에 뛰어든 이유는 뭘까.
마세라티는 2012년 전 세계에서 연간 6000대를 판매하다가 2017년에는 5만 대를 팔며 급성장했다. 하지만 2018년 이후 신차 부족으로 판매량이 줄었다. 여기에 모회사인 피아트크라이슬러(FCA)에서 분리된 페라리가 2021년 이후 마세라티에 대한 엔진 공급을 중단하기로 하면서 전동화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그룹에서 분리된 페라리가 판매량이 감소하는 마세라티를 위해 엔진라인을 유지하기보다는 자사의 차세대 차종에 탑재할 전동화 파워트레인 개발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유럽연합(EU)의 자동차 이산화탄소(CO2) 배출 허용량 규제가 강화되면서 슈퍼카들도 오염물질을 줄이기 위한 전략이 불가피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산화탄소 배출 허용량은 현재 km당 130g에서 내년 95g으로 줄고, 2050년에는 10g으로 강화된다. 허용량을 맞추지 못하면 2021년부터 1대당 초과된 배출량 1g마다 벌금으로 95유로(약 12만 원)를 내야 한다. 이런 흐름 속에서 페라리와 포르셰, 맥라렌 등 다른 슈퍼카 브랜드들도 2025년 이후로는 전동 파워트레인을 탑재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마세라티는 지난달 12일 자사의 연구개발센터인 이노베이션 랩도 공개하며 자율주행 기술도 상당히 진척됐다고 강조했다. 영화관처럼 거대한 스크린으로 둘러싸인 방에 설치된 차량은 화면에서 나오는 시뮬레이션을 통해 자율주행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었다. 구글의 자율주행 자회사인 웨이모가 2009년부터 미국 전역에서 이런 데이터를 수집한 것에 비해 늦었지만 운전의 재미를 강조해온 슈퍼카들도 자율주행의 흐름을 피해 갈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해 보였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전기차의 가속력은 기존 내연기관보다 높을 수 있고, 자율주행 기술도 외부 기술을 쓸 수 있지만 인공적인 엔진음까지 개발하며 슈퍼카 고유의 매력을 유지하려는 이들의 노력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