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이든 차량 구입 전 경험을 위함이든 우리는 시승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7세대 그랜저는 이미 시승을 했었기 때문에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기아 K8이 궁금했습니다. 이래저래 칭찬이 자자한 차량이기도 하고 제가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아하는 현대자동차의 3세대 플랫폼이 그랜저보다도 먼저 들어간 차량이니 말이죠. 파워트레인은 최상위의 것으로 3.5 가솔린 엔진에 네 바퀴를 동시에 굴리는 4WD가 들어간 모델입니다.
시승 차량 정보
간단히 제가 타본 차량에 대해 말씀드리고 이야기 이어나가겠습니다. 쉽게 말해 넣을 수 있는 건 다 넣은 가장 비싼 모델이며 외장은 옵션 가격만 40만원이 추가되는 ‘문스케이프 매트 그레이’라는 컬러입니다. 유일한 무광 컬러이고 시그니처 컬러라고 보시면 됩니다.인테리어는 우드 그레인 내장재와 퀼팅 나파가죽이 들어간 ‘딥 그린 인테리어’인데 저는 실내 디자인에서의 만족도가 상당히 높더군요. 넣을 수 있는 모든 옵션을 다 넣은 차량의 가격은 5,163만원(개소세 5% 기준)입니다.
외장 디자인은 불호
당연히 개취(=개인의 취향) 영역이지만 저는 단언컨데 불호입니다. 내연기관 베이스 모델이지만 갑자기 전기차량 중심모델인양 라디에이터 그릴을 외장 컬러와 통일시켜 버리면서 오는 어색함이 가장 큰 원인인 것 같습니다.다만 현대의 그랜저가 상당히 보수적이면서도 절제된 라인에 중심을 맞추다보니 오히려 화려한 K8이 더 젊어보이고 세련된 느낌을 전달해주는 것도 사실입니다. K8 출시가 훨씬 빨랐지만 아직 디자인적으로는 신차의 느낌을 잘 유지하고 있죠.
매트 외장 컬러도 실물이 괜찮은 편이었지만 글을 쓰면서 사진으로 보고 있자니 실물보다 사진빨(?)을 더 잘받는 컬러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드는군요.
3세대 플랫폼이 들어간 K8과 디올뉴그랜저는 공통적으로 C필러 높이를 많이 낮췄습니다. K8의 경우 기존 7에서 레터링을 바꾸면서 등장했기 때문에 혹시나 스팅어와 같이 트렁크 방식에서 해치도어 방식으로 나오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그렇지는 않네요.이런 외형 디자인은 날렵해보인다는 장점은 있지만 실내 공간 특히 헤드룸의 희생을 동반하기 때문에 2열 거주성이나 개방감만 놓고 봤을 때는 이전 모델이 더 유리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후측면을 보면 아쉬움이 남습니다. 약간 기괴하다고 느껴질만큼 과감한 라인들이 대거 들어가 있는데 세단이다보니 갑자기 뒤쪽이 얇아지면서 더욱 부각되는 것 같습니다.조금 더 투자를 해서 정말 패스트백 형태로 만들었다면 더욱 두툼하게 만들어 실내 공간을 확보함과 동시에 디자인적으로도 더욱 유리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뒤에서 봤을 때, 특히 야간 주행 시 라인만 봐도 K8이라는 걸 알 수 있도록 테일램프를 구성한 점은 디자이너가 차량에 존재감을 불어넣는 목적 달성은 충분히 했다고 말하고 싶네요.
외부 도어 핸들을 잠깐 언급하고 싶네요. 그랜저에서는 플러시 타입으로 도어 핸들 자체가 도어 패널에 들어갔다 나왔다를 하는데 이걸 좋아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저는 그냥 일반적으로 돌출되어 있는 타입을 더 선호합니다. 직관적이고 크게 고장날 일도 없으니 말이죠. K8은 K7 대비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이런 실용 부분에서는 보수적인 감각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오히려 유별나게 다가옵니다.
휠은 245/40/19가 들어가 있습니다. 그랜저는 최대 20인치 휠까지 들어가지면 K8은 한 치수 작은 19인치까지 들어가죠. 혹시 그랜저보다 휠이 작다는 이유로 아쉬워하는 분 계실까요? 제가 봤을 때 이 한 치수 더 작은 휠 덕분에 얻는 장점이 훨씬 더 많다고 봅니다. 그리고 오너가 아니면 두 차량 중 어떤 휠이 더 크고 작고에 아무도 관심이 없습니다.
내리기 싫은 인테리어
자, 오랜시간 잘 참으셨습니다. 아마 오너분들이나 이 차량에 호감이 있는 분들은 저의 개취를 견디느라 마음이 많이 불편하셨을텐데 이제부터는 겨우 몇 가지를 빼놓고는 장점이 훨씬 더 많이 부각될겁니다.
일단 스마트키의 만족도가 좋습니다. 특별한 디자인은 아니지만 정말이지 디자이너의 고심과 휴머니즘에 대한 고찰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최근 현대 마크를 크게 넣어둔 조약돌 모양의 스마트키를 미는 현대와는 다르게 일반적인 디자인을 고집하면서 우측 상단 모서리에 도어락 버튼을 구비함으로써 아주 직관적으로 버튼 배열을 익힐 수가 있습니다.
한 가지 욕심을 내자면 외부 표면의 재질에 투자를 좀 더 하면 어떨까 싶네요. K8은 ‘고급스러움’이 중요한 ‘준대형’ 차량이니 말이죠.
주행을 위해 차량에 앉았습니다. 일단 반가운 것은 디지털 클러스터의 디자인입니다. 그랜저에서 아쉬웠던 것이 바로 이 클러스터의 그래픽이었죠. 너무 심플하고 그랜저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다고 느껴졌는데 K8의 것은 다릅니다.
심플하면서도 포인트 컬러로 멋을 냈는데 과하지 않고 질리지도 않더군요. 그리고 자주색이 포인트 컬러인데 이 컬러가 차량 여기저기에 은근히 녹아 있으면서 전체적인 인테리어 통일감도 주더군요.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제 폰트를 좀 바꿔주면 좋겠습니다. 기아 차량에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폰트인데 소비자가 차량 옵션에서 별도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해주면 어떨까 싶네요. 이제 기시감이 너무 큽니다.
퀼팅 나파가죽과 딥그린 컬러가 들어간 인터레어와 센터페시아 디자인이 오묘하게 어울립니다. 저는 EV6의 인테리어 디자인이 많이 떠오르던데 제가 ev6의 것을 좋아하는 이유는 사용 편의성이 좋아서였습니다.
마찬가지로 K8도 운전자 중심으로 세팅되어 있다는 점이 좋았고 편하고 익숙하지만 예뻤습니다.
하지만 아쉬운 점이 하나 발견되는데 바로 서라운드뷰 카메라의 화각입니다. 아래사진을 자세히 보면 앞타이어 주변에 외곡이 발생하고 있음을 알 수 있죠. 모든 차량이 이럴 가능성은 없습니다.
아마 세팅이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이고 서비스센터에서 각도 조절로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지만 hmg dx의 대표적인 차량을 이렇게 방치해둔다는 점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저도 평행주차를 하는데 연석 주변이 왜곡되면서 주차를 하는데 오히려 방해가 되더군요.
사진으로 보면 딥그린 컬러가 약간 부각이 되는데 실물로 보면 너무 원색적이거나 과하지 않았습니다. 처음 봤을 때는 좀 독특한 컬러구나 싶었지만 이내 익숙해지고 멍하니 구경하고 싶은 컬러였죠.
다만 매트한 외장 컬러와 그린 인테리어 간 조합이 과연 최상이었을까 싶긴 하지만 그래도 매트 외장 컬러를 선택하시는 분들이라면 유니크함에 높은 무게 중심을 둘테니 문제가 될 건 아닙니다.
아쉬운 점이 하나 있습니다. 1열 센터콘솔의 높이가 꽤나 높은 편이라 한 손으로 편하게 기대 운전할 때는 문제가 없지만 양손으로 스티어링 휠을 잡고 이리저리 돌리게 되면 팔꿈치가 센터 콘솔에 계속 걸리게 되어 다소 불편하더군요. 아무리 예뻐도, 아무리 실용적이라 하더라도 운전 자체를 방해하는 요소가 있다면 그건 반드시 없애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2열로 가봅시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역시 엠비언트 라이트 입니다. 도어 트림의 엠비언트 라이트는 도어 캐치 주변에 숨어 있습니다. 하지만 컬러 자체가 굉장히 화려한데 그린 컬러와 오묘하게 어우러지면서 고급스럽고 첨단의 느낌을 잘 녹여내더군요
4륜 차량이다보니 2열 센터 터널의 높이가 상당합니다. 실측해보니 카페트 높이를 포함하여 약 20cm인데 3세대 플랫폼 자체가 워낙 낮게 설계되어 있다보니 드라이브 샤프트 공간을 위해 어쩔 수 없다는 점은 알고 계시면 좋겠네요.
K8만의 장점이 하나 있으니 바로 ‘트라이존’ 공조 기능입니다. 1열의 좌우만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2열에서 별도로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인데 이는 최신 그랜저에도 현재 시점에서는 선택할 수 없는 K8만의 장점이라 하겠습니다. 2열의 거주성이 중요한 분들에게는 요즘처럼 더운 날씨엔 꽤나 중요한 요인이 됩니다.
K8의 실물을 처음 접했을 때 아쉬운 외장을 한 번에 잊게 하는 요소가 있었으니 바로 1열 헤드레스트 뒤쪽 손잡이입니다. 보통은 그냥 하나의 큰 덩어리로 처리해버리곤 하지만 K8에서는 이곳을 손잡이처럼 사용할 수도 있고 간단한 고리로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차를 타고 내릴 때 이런 손잡이가 있으면 승객이 직관적으로 사용할 수 있고 위치도 아주 적절하기 때문에 이런 실용적인 아이디어는 다른 차량에서도 벤치마크할 만하다고 봅니다.
2열 거주성에 큰 요인 중 하나인 2열 암레스트를 보면 구성이 꽤나 알찹니다. 2열에서 조절할 수 있는 버튼들이 깔끔하게 마련되어 있고 컵홀더를 앞쪽으로 빼면서 팔걸이와 음료, 버튼들의 배열이 뒤섞이지 않도록 한 점이 마음에 들더군요.
길다란 짐을 수납할 수 있도록 스키스루도 준비되어 있는데 크기가 약간 작은 편이라 진짜 스키 말고는 적재할 수 있는 것이 많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2열 시트는 폴딩이 되지 않습니다.
차량 외부에서 보면 C필러 아래에 쿼터 글래스가 있습니다. 개방되지 않는 작은 창문이지만 이게 실내에서의 개방감에 꽤나 큰 영향을 줍니다.
실내에서 보면 아래와 같이 보이는데 승객이 2열에 탑승했을 때 옆쪽의 시야에 살짝 걸치게 되면서 개방감을 높여주는 역할을 합니다. 외부에서 봤을 땐 기능적인 면이 있을까 싶었지만 실제로도 쓸만하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풀옵션 차량이다보니 2열 시트에도 열선을 기본이고 통풍시트까지 마련이 되어 있습니다. 열선과 통풍 모두 각 3단계로 조절할 수 있다는 점이 좋네요.
여전히 아쉬운 변속기
일단 최고의 단점 하나 지적하고 가겠습니다. 그랜저도 마찬가지로 8단 자동변속기가 들어가 있는데 아무리 이해를 하려고 해도 용서할 수 없을 정도로 답답합니다. 변속 자체가 느린 건 이해할 수 있는데 변속기가 가속 패달의 입력 후 실제로 동력 전달로 이어질 때까지 딜레이가 정말이지 엄청납니다.
고배기량 자연흡기 가솔린 엔진을 선택하는 소비자는 6기통의 중후함과 동시에 자연흡기 엔진만의 신속한 피드백을 기대하게 될텐데 1.6리터 가솔린 터보 엔진이 들어간 하이브리드 보다도 반응이 느립니다. 배기량 덕분에 출력 자체에 대한 부족함은 크게 느낄 수 없지만 변속기가 운전자 머리 꼭대기 위에서 뭐라하든 말든 신경도 안쓰는 느낌이 너무 강합니다.
4륜 구동 때문인지 확실하진 않지만 이건 해도 너무합니다. 만약에 4륜 구동 때문이라면 저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2륜 차량을 선택할 것이고 변속기 반응에 민감하신 분들은 차라리 하이브리드 모델을 추천드리겠습니다. 모터 덕분에 반응 자체만으로 놓고 봤을 때는 훨씬 더 내 편인 느낌이 강합니다.
파워트레인은 3.5리터 자연흡기 가솔린 엔진이 들어 있고 최고출력 300ps, 최대토크 36.6kgf.m를 냅니다. 이미 디올뉴그랜저에서 경험을 해본 파워트레인인지라 익숙하기도 하지만 뭔가 다릅니다. 조금 더 경쾌한 느낌이 들어 그 이유를 찾아보니
두 차량의 공차중량이 꽤나 차이가 나더군요. 둘 다 전장 5미터를 넘기는 차량이고 동일한 파워트레인이 들어가있으며 가장 큰 휠 기준으로 보면 디올뉴그랜저가 1,800kg, K8이 1,715kg로 85kg 차이가 납니다. 비율로 보면 거의 5% 차이가 나는 것이니 조금 민감하신 분들은 체감할 수 있을 정도가 되는 것이죠.
이 중량 차이와 더불어 서스펜션 세팅도 미세하게 다른데 하나만 꼽으라면 개인적으로는 K8의 승차감이 더 좋다고 봅니다. 출시 때부터 승차감에 대한 호평이 많은 차량이었는데 직접 경험해보니 약간 달리기를 좋아하면서도 승차감을 해치지 않는 레벨 그 어딘가에 위치를 잘 잡은 느낌입니다. 따라서 아주 무른 서스펜션을 선호하는 분들에게는 다소 단단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