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주행차’하면 보통 고급스러운 세단이 떠오릅니다. 운전대가 사라진 실내에서 독서를 하거나 잠을 청할 수도 있는. 비즈니스 파트너와 미팅도 좋습니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기술 발전은 편의의 증진보다 애타는 필요에 의해 가속화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간이 생존을 위해 맨손이 아닌 돌망치로 사냥을 시작한 것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자율주행 기술 완성을 애타게 기다리는 시장이 있습니다. 바로 운송업계죠. 대형 운송수단 시장에 자율주행 기술이 대거 투입되고 있는 이유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보통 큰 차는 기름도 많이 먹습니다. 그렇다면 운송비에서 가장 큰 비중은 차지하는 것이 유류비일까요?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유류비가 아닙니다. 미국 ATRI(American Transportation Research Institute)가 2016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화물 운송 시 가장 큰 비중은 운전자의 인건비로 확인됐습니다. 무려 43%(Wages+Benefits)로 21%를 차지한 유류비보다 훨씬 높죠. 그런데 문제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결정적으로 운전자가 부족하다고 합니다.
밤낮없이 달리는 열악한 근무환경으로 2016년에만 5만 명 정도의 기사 부족 사태를 겪었습니다. 참고로 전체 트럭 운전기사의 규모는 350만 명 수준. 2024년에는 기사 부족 현상이 17만 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트럭업계는 군집주행 상용화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플래투닝(Platooning)’이라고도 부르는 이 방식은 가장 앞선 차에만 운전자가 있고 추종하는 트럭에는 운전자 없이 앞차를 따릅니다. 기술은 2012년에 이미 시연됐습니다. 테스트에 성공한 볼보 트럭은 선두차의 속도, 조향 정보 등을 V2V(Vehicle to Vehicle) 기술로 뒤차에 공유합니다. 앞차와의 간격을 4m 이내로 유지할 수 있고 오차 범위는 20cm. 앞차를 놓쳤을 때의 대응과 시내 주행 능력은 지금보다 더욱 다듬어질 것으로 예측됩니다.
군집주행 운송 기술이 양산되면 위에서 설명한 인건비와 기사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에너지 저감 효과도 크게 기대하고 있습니다. 트럭 사이의 간격을 좁히면 따라오는 차에 미치는 공기저항을 줄일 수 있습니다. 볼보 테스트 결과로는 최대 25%까지 연비가 좋아졌다고 하네요.
트럭 자율주행 기술에 박차를 가하는 자동차 브랜드는 다임러 벤츠, 볼보가 대표적입니다. 지금도 미국 여러 주를 누비며 테스트 거리를 늘려가고 있죠. 테슬라의 자율주행 전기 트럭 ‘세미-트럭’은 2017년 말 세간에 공개했습니다. 지금도 트럭 분야에 한창인지는 의심이 되지만요.
낯선 이름이지만 이 분야에서는 엠바크(Embark)와 스타스카이 로보틱스(Starsky Robotics)도 유명합니다. 엠파크는 미국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전문 업체입니다. 지난해에는 운전자의 조작 없이 3,900km 운행에 성공했습니다. 스타스카이 로보틱스는 자율주행과 더불어 원격제어 기술도 테스트 중입니다.
현대차그룹도 자율주행 트럭에 관심이 많습니다. 물류 회사 글로비스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지난여름 대형 트럭 엑시언트에 자율주행 기술을 탑재해 총 40km 주행 테스트에 성공했습니다. 글로비스는 중국 수출을 위해 ‘아산KD센터-인천항’ 코스를 자주 이용한다고. 테스트 구간은 이 구간 절반에 해당하며 실제 수출 부품들을 싣고 주행했습니다.
물류를 나르는 트럭뿐 아니라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버스 분야도 자율주행 기술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자동차 소유 개념이 줄어듦에 따라 공유 서비스와 대중교통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죠. 버스는 지하철과 함께 도심 지역을 책임지는 주요 대중교통입니다.
자율주행 버스 역시 트럭과 마찬가지로 인건비 감축이 주요 화두입니다. 대중교통 운용에 필요한 전체 비용을 줄이면 국민들이 부담해야 할 이용료를 줄일 수 있습니다. 그만큼 사회 취약계층과 교통약자에게 주는 혜택을 높일 수 있습니다.
대형 트럭이나 버스에 의한 사고는 작은 차 사고보다 피해 규모도 큽니다. 특히 대규모 인명피해 사고의 경우 트럭과 버스가 포함된 사고가 많죠. 최근 몇 년간 국내에서 발생한 고속도로 대형 사고를 살펴봐도 비슷합니다. 대체로 운전자로부터 사고가 시작된 게 많았죠. 살인적인 운행 스케줄에 따른 휴식시간 부족, 운전 중 휴대전화를 사용해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안타까운 생명이 희생되고서야 제도는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에 가벼운 생명이란 없습니다. 피해가 한 명이어도 열 명이어도 소중한 건 매 한 가지입니다. 그러나 한 번의 사고로 큰 피해가 예상되는 사고들은 미연에 방지해야 합니다. 트럭이나 버스처럼 큰 차들에 자율주행과 능동적 안전 기술들이 많이 적용된다면 그런 불행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고석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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