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이란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내는 예술이자 학문이다. 그 중 자동차는 산업 디자인의 범주에 속한다. 자동차 산업의 ‘굳 디자인’이란 겉모습만 꾸며내는 예술 행위가 아니다. 요컨대 심미성은 디자인을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맞다. 하지만 소비자에게는 기능성과 사회성, 안전성, 지속가능성, 경제성 등 비즈니스 모델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있다. 모든 산업은 법적인 규제와 기술적 제약이 복합적으로 가중되기 때문에 디자이너의 아이디어를 고스란히 그려내기 어렵다.

2020년, 현대자동차는 E-GMP라는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개발을 마쳤다. 이듬해 HMG 최초의 전용 플랫폼 전기차 ‘아이오닉5’가 글로벌 시장에 공개된다. 현대자동차는 전동화 트렌드를 기회의 장으로 삼았고, 그 성과는 ‘2022 세계 올해의 차’라는 수상 실적으로 명시했다. 아이오닉5는 다방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전기차의 장점인 정숙성, 승차감, 공간성, 그리고 고전압 충전과 항속거리가 심리적인 거부감을 허물었고 무엇보다 디자인적인 접근이 훌륭했다.

현대차는 아이오닉 5의 디자인에 ‘포니’의 헤리티지를 반영했다고 밝혔다. 디자인은 하나의 경영 전략과 같다. 특히 기업 가치를 내세우는 프리미엄 브랜드에 가까울수록 디자인에 많은 의미 부여를 한다. 목적은 소비자를 설득하는 것이고, 브랜드의 ‘헤리티지’ 만큼 부가가치를 덧붙이기에 훌륭한 수단은 없다. 아무튼 서론에서 밝혔던 산업 디자인의 제약을 극복하는 것이 레거시 브랜드들의 오랜 과제다. 수십년전 단종된 클래식카를 새로운 디자인 테마로 채택했다는 점에서 현대차가 브랜딩 전략에 대해 조금 더 심층적으로 다가섰다고 느낀다.

구체적으로 아이오닉 5는 2019년 IAA에서 공개했던 45EV 콘셉트의 디자인 언어를 반영했다. 45EV라는 이름은 당해를 기준으로 45년 전에 출시되었던 포니를 암시한다. 그 당시의 자동차 디자인은 더욱 열악한 캐스팅 기술및 프로그래밍, 플랜트 공학의 환경속에 양산되었다. 더 유연하고 복잡한 자동차를 자동화된 공정 절차로 생산한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기술이다. 49년이 지난 지금의 현대차가 보이는 모습이다. 단, 전기차 시대에는 개념이 살짝 다르다. 아직까지 배터리 셀의 성능 제약이 분명하기에 공력성능과 공간활용성, 생산성을 극대화한 디자인이 ‘비즈니스 모델’로 선정되는 트렌드다.

필자는 아이오닉 5에 포니의 디자인 헤리티지를 직접적으로 반영했다고 느끼지는 못했다. 몇 가지 디자인 요소를 간접적으로 채택했을 뿐이다. 애초 전용 플랫폼 전기차와 엔진 세로 배치 후륜구동 자동차는 폼팩터부터 다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영감’은 확실하다. 약 49년 전에 공개되었던 ‘포니’의 디자인은 어떤 비즈니스 모델을 추구하며 탄생했을까? 아이오닉 5가 대외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은 합리적인 상품성의 솔루션과 동일한 맥락이라고 이해한다.

포니는 대한민국 자동차 산업의 기원과도 같다. 관련 부품의 국내생산 비율이 90%에 달했기 때문에 최초의 고유 모델이라고도 칭한다. 당시 엔진이나 변속기 같은 구동 계통의 설계는 미쓰비시에 로열티를 지불했다. 그에 대한 투자만큼 디자인에 할애한 비용도 막대했다. 포니를 담당한 디자이너가 무려 이탈리아의 ‘조르제토 주지아로’다. 주지아로는 쐐기형 디자인으로 디자인사에 한 획을 그었던 인물이고, 포니가 지닌 직선 위주의 스타일링과 패스트백 바디가 이를 방증한다.

1970년대는 석유파동의 영향으로 기능 주의적 디자인이 유행했을 시기였다. 원가절감을 위해 대량생산을 목적으로 하는 자동차는 단조롭고 투박한 외모를 지닐 수밖에 없었다. 즉, 필연적으로 뚜렷한 특징이 존재하기 어려웠을지 모른다. 그나마 포니는 하나의 프레임에 쌓인 쿼드램프와 그릴, 그리고 쐐기형의 범퍼가 상징적이다. 가령 완만하게 맞아떨어지는 C필러와 헤드램프에서 테일램프까지 이어지는 캐릭터 라인, 그리고 수평형으로 나열된 테일램프가 특징적이라 해도, 포니만의 디자인 요소는 아니라고 본다.

형식적으로 45EV 컨셉트 카에는 포니의 디자인 헤리티지가 대부분 반영되어 있다. 대신 부가적인 디자인 요소들이 많이 추가되었는데, 전술한 내용처럼 애당초 포니의 스타일링 기법이 유별나진 않다. ‘레트로’ 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접근하는 방식은 참 다양하다. 과거의 디자인을 그대로 재현하는 경우도 있고, 일부 상징적인 요소들을 채택하여 향수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45EV가 지닌 쿼드램프는 포니의 대표적인 헤리티지다. 역시 하나의 프레임에 통합되어 있다. 범퍼는 음영을 통해 입체감을 조성하는데, 포니의 프런트 범퍼와 비슷한 형상이다. 측면 디자인은 명백한 포니의 비율이다. C필러의 가파른 실루엣과 에어벤트, 차체의 면을 분할하는 캐릭터라인이 한눈에 들어온다. 수평형으로 나열한 테일램프도 영락없는 포니가 맞다. 그 외의 기교가 느껴지는 부분들은 전부 45EV의 픽션이다.

45EV 는 상품성을 우선 고려한 전형적인 매스브랜드의 레트로 디자인이라 본다. 단, 포니의 디자인을 상징하는 키워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곧 ‘시장성’이라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양산형인 아이오닉 5의 디자인은 그런 EV45의 모습을 반영했다. 하나의 프레임에 통합된 쿼드램프, 역삼각형의 프런트 범퍼, 수평형의 벨트라인과 5도어 해치백의 형태는 포니의 디자인 헤리티지로 인정한다. 특히 가파른 C필러를 형상화하기 위한 노력이 인상 깊다. 하지만 현실과의 타협도 분명하다.

첫인상 부터 상당히 부드러워졌다. 포니와 45EV 컨셉트 카의 투박함은 감쇠되었다. 공력, 안전, 공정 등 비즈니스 모델을 만족시키기 위한 현실과의 타협이다. 앞서 말한 포니의 ‘시장성’이 아이오닉 5에 담겨있는 헤리티지라고 이해한다. 포니가 지닌 FR 레이아웃과 투박한 차체로는 비즈니스 모델을 만족시키기 어렵다. 그렇다 보니 ‘기능 주의’라는 정신적 기조가 남아 있다. 49년 전 포니는 시장성을 바로잡기 위해 최선의 노력으로 탄생한 디자인이었고, 이는 현대 시대의 아이오닉 5도 마찬가지다. 맹목적으로 포니의 디자인을 따르고자 기능성을 희생시켰다면 ‘굳 디자인’은 될 수 없었다.

아이오닉5를 설명할 수 있는 부가적인 스타일링 기법은 ‘파라메트릭’이다. 이는 현대자동차 포르폴리오 간의 통일감을 부여하는 패밀리 룩이다. 파라메트릭은 차체 곳곳에 새겨진 기하학적인 그래픽을 아울러 칭한다. 등화류에 새겨진 픽셀 패턴을 비롯해 범퍼와 로커패널, 도어 패널을 주름잡는 대각선의 캐릭터라인 까지 전부 파라메트릭의 일환이다. 덕분에 분명 미래지향적이고 세련된 분위기가 느껴진다. 현실과의 타협을 위해 포니의 폼팩터를 변형하는 대신, 현대적인 그래픽을 담아 ‘뉴트로’ 디자인을 제시한 것이다.

현대차는 EV45를 공개한 이후에 ‘포니 헤리티지’라는 콘셉트 카를 별도로 공개한 바 있다. 전기차지만, 영락없는 ‘포니’였다. 클래식 카의 디자인을 그대로 재현하여 구동계만 현대화를 거치는 ‘레스토모드’ 카다. 그나마 차이점을 찾자면 할로겐 램프 대신 파라매트릭 LED 패턴이 적용되었다는 것이다. 현대차는 포니의 헤리티지 복원에 진정성이 있어 보였다. 실제 아이오닉 5의 디자인은 많이 변질되었다고 표현했지만, 포니를 오마주 했다는 내용만으로도 큰 화젯거리가 된 건 전략적인 성공이다.

포니가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자동차는 아니다. 오히려 불편하고 허접한 자동차에 가까울지언정, 70년대만 해도 자동차는 부자들의 전유물이었다. 당시 대한민국은 개발도상국에 속했다. 대중들을 위한 자동차란 존재하지 못했다. 자동차 산업은 인류의 이동성을 책임지고, 이는 곧 삶의 질을 나타낸다. 포니는 국산화를 통해 많은 사람들의 일자리를 창출해 주었고, 많은 사람들의 이동 수단을 제공해 주었다. 규모 경제의 성장을 촉진했던 것이다.

즉, 포니는 사회,역사적으로 많은 가치를 담아내고 있다. 자동차 국산화의 초석이었고, 결과적으로는 대한민국 자동차 산업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대한민국은 자동차 강국의 반열에 들어섰다. XY 세대는 그런 포니에 대한 동경심 내지는 친근감을 떠올릴 것이다. 그게 포니라는 브랜드가 지닌 의의라고 해석한다.포니의 디자인은 ‘기능주의’에 근간을 둔다고 했다. 5도어 해치백 형태로 공간 활용을 추구했고,패스트백 스타일의 C필러는 비교적 공기저항에 유리했다.

시장성을 고려하면 화려한 디자인은 사치였고, 경제성을 지녀야만 수요를 확보할 수 있었다. 이후, 전기차는 충전에 대한 제약으로 인해 시장성이 부족했다. 그래서 심미성보다는 기능성을 택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해치백 구조는 공간활용성이라는 전기차의 장점을 극대화하기 위함이고, 포니의 디자인을 따르면서도 항속거리를 늘리기 위해 공기저항을 최선으로 고려했다.

구체적으로 아이오닉5의 항력계수는 0.288Cd라고 한다. 특수 설계된 리어 스포일러와 가변식 라디에이터 그릴 ‘AAF’, 그리고 A필러의 각도마저도 공기저항을 우선적으로 고려한 형태였다. 플러시 타입 도어핸들은 디자인의 일체감도 더하지만 저항력도 줄여준다. 전용 플랫폼 E-GMP는 차체 오버행을 최소화 하고 휠베이스를 늘려 실내 공간을 최대화한다. 보닛 안에는 추가적인 적재공간을 구현했고, 센터터널을 가르는 큼지막한 변속기나 샤프트도 없다.

결국 포니도 기능 주의에 의해 탄생한 디자인이었고, 이는 ‘포니’의 디자인에서 영감을 받은 아이오닉5도 마찬가지다. 현대차가 포니를 오마주한 콘셉트 카에 45EV라는 이름을 부여한 건 45년의 역사를 반영했기 때문이다. 그 모습이 크게 비슷하지는 않더라도 45년이 흐른 현재의 실용주의는 포니의 정신적 기조를 고스란히 이어받는다. 포니는 합리적인 상품성을 통해 대한민국 자동차 산업의 미래를 개척했다. 아이오닉5는 전기차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보였다.

순수 내연기관 자동차의 전성시대는 끝났다. 순수 전기차의 점유율 잠식까지는 몰라도 자동차의 저탄소화를 위해 전동기는 사용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제 현대자동차는 앞으로의 45년을 준비한다. 그리고, 아이오닉5는 포니의 업적을 기리는 전기차다. 이전까지의 전기차는 ‘무공해’라는 명목만 분명할 뿐 소비자들이 가벼운 마음으로 선택할 수 있는 제품이 아니었다. E-GMP와 아이오닉 5는 보다 대중적인 전기차 양산의 첫걸음이다.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자동차 강국 대한민국을 만들어준 포니의 나비효과처럼.

 

 

유현태
자동차 공학과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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